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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는 코로나 이후 엉망진창이 되었다

“한국교회가 코로나 이후 엉망진창이 됐다.” 한성열 교수님께서 미래목회포럼(10월 5일(목),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 발제하신 내용입니다. 아래의 내용은 빛과소금뉴스의 기사입니다. “한국교회가 코로나 이후 엉망진창이 됐다.오늘 포럼을 통해 한국교회가 다시 한번 도약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이사장 이상대 목사의 인사말로 시작한 포럼에서 한성열 교수님은 “목회자 소진과 상담”이라는 제목으로 “목사가 번아웃 되기 전에 반드시 상담을 받아야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한 교수는 “목회자는 감정노동을 하는데 자신의 감정을 해결할 곳이 없어 번아웃에 빠지게 된다”며 이는 “단지 기도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상담받는 것을 꺼리지 않고 일이 커지기 전에 미리 상담을 받아야하며 이를 위한 환경이 조성되어야한다”고 말했다. 한걸음 더 나가 “예수님도 어려울 때 상담을 받으셨기에 목회자들도 상담을 통한 회복을 통해 사역을 감당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강의안 전문입니다.

미래목회포럼에서 주관하는 제19-5차 정기포럼의 제목이 〈다음 세대와 한국교회의 회복 방안〉이다. 이 제목을 접하면서 기쁜 마음보다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더구나 〈팬데믹 이후 목회자 탈진〉이라는 부제를 보면서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한국교회의 회복 방안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한국 교회가 많이 손상되어 있다는 전제(前提)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목회자의 탈진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도 이미 목회자들이 많이 탈진되어 있다는 현실을 암암리에 암시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회피하거나 은폐하기보다는 공개하고 공론화한다는 것은 또한 그만큼 아직까지 회복할 수 있는 저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한 통계를 보더라도 한국 기독교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먼저 기독교인이 줄고 있다. 특히 미래의 교회를 이끌 젊은이들이 대거 교회를 떠나고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교단 중 하나인 예장통합의 예를 들어보자. 2023년 총회 보고에 따르면, 통합교단의 전체 교인 수가 감소했다. 2022년 말 기준 전체 교인 수가 230만 2682명으로 집계돼 전년 대비 5만 6232명(2.38%)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일 년 동안 100명 출석 교회가 562개가 사라졌다는 뜻이고, 50명 출석 교회가 1125개가 문을 닫았다는 의미이다. 이 현상이 불과 1년 동안에 일어난 것이다.

교인은 감소한 반면, 교회 수는 55개 증가해 9476개로 집계됐다. 목회자 중에서는 목사는 늘어나고 전도사와 교육전도사의 수는 감소했다. 목사 수는 757명(3.53%) 증가해 2만 2180명, 전도사는 61명(2.52%) 감소한 2359명, 교육전도사는 57명(1.73%) 감소한 3231명이다. 교인 수는 주는데 목사가 는다는 것은 목사 한 명당 사역하는 교인 수가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교회 수가 줄기 때문에 목사들이 사역할 교회를 찾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또 찾는다고 해도 교인 수가 적은 교회이거나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암담한 현실에서 젊은 전도사와 교육전도사 수가 준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고, 신학교마다 정원을 채우지 못해 존립을 위협받는 것도 엄연한 현실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또 다른 대표적 교단인 예장합동의 경우 교인 수가 약간 증가했다는 점이다. 예장합동의 2023년 총회 보고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매년 큰 폭으로 교인 감소세를 보여 왔다. 2012년 299만 4783명을 기록한 이후, 2016년을 제외하고 매년 교세가 감소했다. 코로나 시기에는 한 해에만 17만 여명이 감소하기도 했다. 2013년 이후 빠져나간 교세는 70만 2128명 규모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2022년말 기준 전체 교인이 235만 1896명으로 집계돼, 전년 대비 5만 9151명(2.6%) 증가했다고 밝혔다. 비록 감소한 교인 수에 비하면 미미한 수이지만, 그래도 감소 추세가 반전되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전반적인 추세는 계속 기독교인이 감소하고 있다. 이런 추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전도폭발’이나 ‘영적대각성’ 등의 집회를 통해 교회를 떠난 교인들을 되돌리기 위해 애쓰지만 기대했던 효과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이에 덧붙여, 기독교에 대한 사회의 시각은 점점 더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대진대학교 권선희의 2022년 논문 「매체를 통해 본 한국인의 종교 이미지: 코로나19 이후를 중심으로」에 의하면, 코로나19 이후 기독교의 이미지는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난 반면, 천주교와 불교의 이미지는 긍정적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런 현상은 구태여 학술적 연구들을 통해서만 어렵게 검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교인 수가 주는 현상에 이미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목회 여건에서 고군분투하는 목회자들이 탈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런 힘든 목회 현실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힘든 여건이 조성된 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라 이미 상당 기간 지속된 것이지만 그동안 교회가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교회 자체의 문제 외에도 사회적 현실 자체가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현실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현실의 변화에 민감하게 영향받을 수 밖에 없다. 작금의 한국의 현실은 어느 한 부분이라도 긍정적이라고 자신할 수 없을 정도로 총제적으로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목사와 마찬가지로 가르치는 일이 중요한 교사들도 금년 2학기 들어서만 9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담한 현실이다.

하지만 목회는 현실이 부정적이라고 포기하거나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 여건과 관계없이 교회는 교회로서의 신성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야 한다. 오히려 현실이 부정적이며 부정적일수록 오히려 교회와 목사가 더욱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지속적인 변화를 꾀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또 구조적인 원인은 그 구조를 변화시키는 노력을 쉬지 말아야 할 것이고,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는 빨리 그 해결 방안을 찾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도 이미 밝혔듯이 한국교회의 문제에는 목회자 개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산재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목회자 개개인은 무기력하게 수동적으로 여건이 좋아지기를 기다릴 수 없다. 결국 한국교회의 회복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끊임없이 기도하고 노력하는 한 사람의 목회자들이 모여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필자는 이 글에서 교회의 회복을 위해 가장 시급한 목회자의 탈진의 원인과 그 해결책만을 다루어보려고 한다. 특히 목회자의 심리적 건강에 중점을 두고 논의할 것이다. ‘脫盡(脫盡)’은 말 그대로 ‘기운이 다 빠져 없어진 상태’이다. 같은 의미로 심리학에서는 ‘소진(消盡)’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소진은 영어 ‘burn out’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소진’도 ‘점점 줄어들어 다 없어진 상태’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소진’은 과도한 업무나 학업 등에 지쳐 자기 혐오감, 무기력증, 불만, 비관, 무관심 등의 부정적 감정이 극도로 커진 상태를 뜻한다. 소진이 되면 의욕도, 일을 해 나가려는 동기도 잃어버리고 극단적인 무기력감에 빠진 자포자기 상태가 된다. 현대 사회에서 일은 개인의 삶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한다. 우리 자신을 구성하는 ‘자기관’은 자신의 일을 통해 현실화된다. 그래서 일은 자기실현을 달성하는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다. 이렇게 중요한 일에서 소진을 경험하면 일을 능률적으로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잃을 뿐만 아니라,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포기하거나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

이런 부정적 감정을 잊기 위해 약물이나 술에 의존하거나 게임이나 성에 탐닉하기도 한다. 그 결과 점점 더 무기력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렇듯 소진은 우리 삶에 심리적인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심리학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다.

목회자의 소진은 목회자들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라고 규정하는지에 달려있다. 대개의 경우 그것은 목회활동일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의 소진은 목회 역할을 수행하면서 겪는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인 어려움과 피로에서 기인한다. 목회자는 교회나 종교 단체에서 영적 지도, 가르침, 진실한 관계 형성, 위로, 조언, 기도, 그리고 교회 운영에 대한 거의 모든 책임을 맡아 사역한다. 목회를 직업에 비유해서 말한다면 유능한 목사가 위해서는 소위 ‘다중처리능력(multi-tasking)’이 필요한 직업이다. 이런 역할은 단일 과제만 해결하는 직업에서는 얻을 수 없는 큰 보람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동시에 다른 직업에서는 느낄 수 없는 큰 압력과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으며, 목회자의 소진은 이러한 압력과 스트레스의 결과로 나타난다. 그만큼 목회는 소진을 일으킬 확률이 많은 사역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과 같은 큰 인물조차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장 24절)”라고 울부짖을 수밖에 없는 것이 목회의 어려움이다. 이 어려움에서 탈진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교회나 단체에서 다양한 과제를 유능하게 처리해야 하는 목사는 무엇보다 먼저 본인 자신이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 그래야 막중한 목회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목사는 아프면 안 된다. 그러면 자신에게 맡겨진 다양한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본인이 영향을 줄 수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사의 소진을 심각하게 다루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소진을 문제를 더 깊이 다루기 전에 건강, 특히 마음의 건강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소진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방하는 것이다.

한의학에는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라는 말이 있다. 해석하면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파진다”라는 뜻이다. 전설적인 한의(韓醫) 허준의 『동의보감』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즉, 기와 혈이 원활히 순환되어야만 아프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한의학에서는 몸의 건강을 설명하면서 이 개념을 사용하지만, 아마도 마음의 건강 영역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건강의 본질은 원활한 사회적 관계 유무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관계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즉 통하지 않으면 마음도 병들고 아프게 된다.

동아시아의 ‘관계중심’ 문화권에서는 서양의 ‘개인중심’ 문화에서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원만한 인간관계를 삶에서 더욱 중요시한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핵심이다. 한자의 사람을 뜻하는 ‘인(人)’ 자가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것’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영어의 ‘human man’을 뜻하는 ‘인간(人間)’이라는 단어도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뜻이다. 사람은 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항상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로 보는 문화에서는 당연히 원만한 대인관계를 맺느냐 못 맺느냐가 건강한 삶에 직결되어 있다. 목회의 핵심도 결국 사람과의 관계, 즉 교인들과의 관계를 얼마나 원활히 맺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음도 몸과 마찬가지로 건강하지 않으면 결국 병든다. 몸이 병든 것과 마음이 병든 것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제일 중요한 공통점은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몸도 마음도 병들면 고통을 느낀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몸의 건강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마음의 건강은 사회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몸이 병들면 ‘나 혼자’ 고통을 느낀다. 몸이 아파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며 대신 아파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지라도 누구도 대신 아파줄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몸의 건강은 개인적이다.

대조적으로, 마음이 병들면 ‘나’보다 ‘주위’ 사람들이 더 많은 고통을 느낀다. 정작 병든 본인은 고통울 느끼기보다 우울해지거나 반대로 주위 사람들에게 폭력적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실제로 고통받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그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주위 사람들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마음이 병든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주위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지 대개는 모른다. 그래서 몸이 병든 사람들과 달리 마음이 병든 사람은 자기 스스로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어 전문적인 도움을 받자고 권유하면 오히려 화를 내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런 면에서 마음의 건강은 사회적이다.

마음이 건강한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마음이 병든 상태를 알아보는 것이 편리하다. 한국 사람들이 제일 많이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은 화병(火病)이다.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출판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은 정신질환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각종 정신질환의 정의 및 증상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들을 제시한다. 이 편람의 4판(DSM-4)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걸리는 대표적인 마음의 병이 ‘화병(Hwa-Byung)’이라고 소개되기도 했다.

화병은 화(火)가 풀리지 않고 쌓여서 생기는 병(病)이다. 화가 났어도 화를 잘 풀면 병이 생기지 않는다. 한자 화(火)는 ‘불’을 의미한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화가 났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불이 났다는 뜻이다. 속에 불이 나서 지금 마음이 타들어가면서 생기는 병, 즉 마음이 화상을 입는 병이 화병이다.

일반적으로 가정이나 학교 또는 교회에서도 화는 나쁜 것이라고 가르친다. “화내는 것은 나쁜 거니까 화내지 말고 참아라‘라는 훈계한다. 마음속의 불을 꺼야, 즉 화를 내야 화가 풀리는데 표현하지 않고 억누르고 있으니 마음속의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타고 있다. 다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단지 ’내연(內燃)‘하고 있을 뿐이다. 계속 마음이 화상을 입고 있지만, 다만 아프다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하지 못하니까 우회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화가 쌓이면 화가 더 강렬해진다. 한자로 설명하면 화(火)가 두 개가 되는 것이다. 화(火)가 두 개가 되면 ‘불탈 염(炎)’이 된다. 화가 둘(炎)이 있다는 의미는 마음속에서 계속 강한 불이 붙고 있다는 것이다. 소위 화병에 걸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화병의 증상은 겉으로 나타나면 폭력이 되고, 내부에서 타고 있으면 우울증이 된다.

계속 화가 쌓이게 되면 마지막으로 화가 세 개가 되는 강도가 된다. 화가 세 개 있는 한자가 ‘불꽃 焱(염)’자이다. 이 단계가 되면 이제는 더 이상 참거나 약한 폭력으로는 견딜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폭력이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외부로 표출되면 살인이 되고, 내부에서 폭발하면 자살하게 된다. 화가 나면 결국 살인하게 된다는 것은 성경 창세기 4장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인류 역사 최초의 살인사건은 최초로 화를 낸 인간 가인(Cain)이 저지른다.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은 화를 쌓아두지 말고 ‘말’로 푸는 것이다. 한자 ‘담(談)’자는 ‘말로 화를 푼다’는 뜻이다. 하지만 혼잣말을 하기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면 더 효과가 크다. 그래서 ‘담(談)’자 앞에 ‘서로 상(相)’자를 하나 더 붙이면 ‘상담(相談)’이 된다. 결국 상담은 ”서로 상대방(相)의 마음속의 화(炎)를 대화(言)로 풀어주는 것“이다.

목회자의 소진을 논하면서 상담에 대해 다소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바로 소진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담을 통해 화를 푸는 것이라는 점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소진은 결국 일을 하면서 쌓이는 화를 잘 풀지 못하고 마음속에 쌓아둘 때 생기는 현상이다. 소진에 수반되는 대표적인 부정적 감정이 우울과 무기력감인 이유이다. ’소진(消盡)‘이 영어 ’burn out’ 즉 ‘불에 타서 없어진다’는 뜻에서 나왔고, 또 ‘소(消)’ 자가 불을 끈다는 뜻이 있는 것을 보면 화를 푸는 것이 소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사가 화가 나는 이유는 심리적으로 보면 일반 다른 직업인하고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화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한 마디로 정리하면 자신이 원하거나 옳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직업이나 화가 안 나는 직업은 없다. 하지만 소진이 되는 빈도와 강도는 직업에 따라 현저하게 다르다. 편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쉽게 화해할 수 있는 직업에서는 소진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화가 났어도 쉽게 해소할 수 없는 직업일 수로 소진이 더 자주 더 심하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감정노동‘으로 분류되는 직업군에서 소진이 쉽게 일어난다. 감정노동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노동이다. 상대에게 화가 나지만 그 화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노동이다. 목회도 이런 의미에서 대표적인 감정노동에 속한다. 즉 목사도 당연히 목회하면서 사람들과 갈등하고 화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목사는 화를 겉으로 표현하는 것을 극도로 자제해야 하는 직업이다. 특히 사역의 현장에서 만나는 교인들과의 갈등이나 불화 때문에 오는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면 안 되는 것으로 자타가 인식하고 있다. 이런 갈등의 상황에서 목회가 기대했던 대로 수행되지 못하면 소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필자는 지난 8년간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미국 그리고 다양한 지역에서 사역하는 목사, 선교사 및 배우자들과 함께 심리학과 상담을 공부하고 직접 집단상담에 참여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목회자와 배우자들을 상담하고 있다. 이들은 상담에 참여하는 동안에만은 본인이 목사나 사모라는 직책을 내려놓고 가능한 한 자연인으로 돌아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진솔하게 만나고 표현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 과정 속에서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화를 인식하고 마음놓고 표현하는 경험을 한다. 이 경험을 통해 이들은 자신을 진정 괴롭혔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진솔하게 경험한다. 그리고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경험을 하곤 한다. 물론 목회에서 소진됐던 상태에서 벗어나 다시 힘을 얻고 사역의 현장으로 가곤 한다.

건장한 체격의 목사A는 20여 년 전에 함께 교회를 개척하여 잘 성장시켜온 친구 이상으로 믿고 지내 온 장로 두 사람과 심한 갈등을 겪으며 화가 많이 나 있었다. 하지만 목회자는 화를 내면 안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일주일에도 몇 번씩 교회에서 마주쳐도 항상 웃는 낯으로 공손하게 대했다. 장로들과 부딪히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식욕도 없고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곤 했다. 결국은 부정맥을 앓게까지 되었다. 그는 목회에도 힘이 나지 않았고 교인들을 대하는 것이나 설교 준비를 하는 것 모두 예전처럼 힘이 나지 않아 결국 목회를 그만두어야 할 기로에 설 즈음에 집단상담에 참여하였다. 어느 감정을 표현해도 공감하고 위로해주는 집단원들에게 힘을 얻어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장로들에 대한 분노를 가감없이 표출하기 시작했다. 격렬했던 감정 표현이 끝난 후 필자는 그에게 현재의 느낌을 물었다. 그는 큰 소리로 ”부정맥이 없어졌어요“하면서 손을 흔들면서 할렐루야를 연호하였다. 그 결과 그는 자신에게 반대하던 장로들의 진심도 이해하게 되었고, 그동안의 무기력함에서 완전히 벗어나 목회를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힘차고 즐겁게 목회했다.

성악을 전공한 사모B는 원래 쾌활하고 스스럼없이 남 앞에 잘 나서는 성격이었다. 신실한 장로의 딸로 성장한 그는 소심하고 소극적인 성격의 목사와 결혼하였다. 장로 아버지는 사위가 목사 안수를 받자 교회를 개척하여 사위에게 목회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장로는 매사에 소극적이고 소심하여 교회를 기대대로 성장시키지 못하는 사위 목사에게 일일이 간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위는 장로 장인의 위세에 눌려 시키는대로 목회하는 꼭두각시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런 남편과 아버지를 바라보는 사모는 화가 났지만 본인까지 갈등에 끼어들면 더 커질 것같이 참고 또 참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점차로 활기를 잃어갔고 그렇게 좋아하던 노래를 멈췄다.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것조차 싫어서 예배시간에는 식당에서 점심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냈다. 교인들도 이런 목사와 사모에게 불평하고 반감을 드러내면서 교회는 완전히 장인 장로에 의해 운영되었고, 사위는 단지 명목상의 목사에 불과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목사와 부인은 점점 기가 죽어갔고 무기력하게 되었다.

집단상담에서 사모B는 말문이 열리자 거의 3시간 동안을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화를 내다가 통곡하기도 하고, 자신을 이렇게 무기력하게 만든 남편에 대해서도 욕까지 하면서 마음속 깊이 억눌렀던 화를 풀기 시작했다. 사모B는 자신의 감정을 공감해주고 함께 슬퍼해 주는 집단원들 속에서 무려 3시간 동안 쌓이고 쌓인 감정을 쏟아냈다. 밤 10시에 집단상담이 끝나고 모두 취침할 준비를 할 때 갑자기 온 건물이 떠나갈 듯한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만 조금 후 성악을 전공했던 그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노래를 되찾는 것임을 알고 아무도 말리지 않고 오히려 큰 변화에 감동하면서 노래를 들었다. 그는 복도를 뛰어다니면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송가를 불러댔다. 그렇게 소심하고 나약하게 보였던 몸에서 어떻게 그렇게 크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지 믿을 수 없었다. 마침 그 건물에는 우리만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그의 노래와 춤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다음 날 아침 식당에서 만난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목사들은 ’성직자(聖職者)‘로서의 자의식과 책임감이 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특히 교인들에게 신앙적인 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생활에서도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심리적 압력을 강하게 받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을 모범으로 보여야 하기 때문에 화를 드러내지 못한다. 교인의 잘못이 명백한 상황에서도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는 용서와 관용의 본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감정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진되지 않고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음 놓고 상담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목사들은 일반적으로 마음이 불편하면 상담받기보다 기도와 말씀으로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상담받는다는 것은 나약하거나 목사로서 믿음이 적은 행동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태 22:17)”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상담으로 해결할 것은 상담으로, 기도로 해결할 것은 기도로 해결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는 앞으로 오실 메시야 즉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비교적 소상히 알려주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개역개정〉 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알려주고 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9장 6절).” 그에 의하면 예수님은 무엇보다 먼저 “기묘자요 모사”이다. 이 구절은 <공동번역>에는 ‘탁월한 경륜자’라고 되어 있고, <새번역>에는 ‘놀라우신 조언자’, <현대인의 성경>에는 ‘위대한 스승’으로 소개되었다.

하지만 다양한 영어 성경에는 모두 “Wonderful Counselor”로 통일되어 있다. “Wonderful”은 비교적 쉬운 단어로 “놀라운” “뛰어난”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Counselor”는 “상담자”이다. 이사야 선지자의 소개에 의하면, 예수님은 “놀라운 상담자”이다. 예수님 스스로도 자신을 상담자라고 소개해주었다. 신약성경에 “보혜사”라고 나오는 단어는 영어성경(NIV)에 “Counselor”라고 되어 있다(요한 14장 16절).

‘놀라운 상담자’인 예수님이 하시는 상담은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30절까지에 잘 나와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것이 바로 ‘놀라운 상담자’인 예수님의 상담 사역의 본질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때문에 화나지만 풀 방법도 모르고 풀어줄 대상도 모르고 지쳐 소진해가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이 도와줄 대상이다.

예수님 자신도 정말 힘들 때 하나님께 상담받았다. 예수님이 심리적으로 제일 고통받을 때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이었다. 이때 예수님은 상담받았다. 물론 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형식의 상담을 받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가복음 14장 36절).” 이 구절이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에는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나를 여기서 벗어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하십시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되어 있다.

누가복음 22장에는 첫 번째 기도 후에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43절)”라고 알려주고 있다. 첫 번째 기도 후 예수님의 기도에 응답하여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힘을 더해주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음을 피하려는 처음의 마음에서 벗어나 담대히 죽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예수님은 “놀라운 상담자”로서 많은 사람들을 상담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힘들 때에는 하나님께 상담받기도 하셨다.

상담자로서의 예수님을 자세히 설명한 이유는 오늘날 목사들이 소진에서 벗어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첫 번째 단계가 바로 상담임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본받아 살기를 누구보다 소망하는 목회자도 힘들고 화날 때가 있다. 이떄 예수님처럼 주저없이 상담받으면 하늘에서 오는 힘을 받아 소진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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